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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의 새로운 챔피언 레버쿠젠, 그들의 무패전설은 현실이 될 것인가

1. 클럽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인 감독 교체

 

사비 알론소와 레버쿠젠의 프론트 [단장 롤페스(좌), CEO 카로(우)]

 

헤라르도 세오아네 감독 체제 하에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내던 레버쿠젠은 결국 리그 강등권까지 내려가는 걸로 모자라 UCL 조별리그에서도 FC포르투에게 2:0으로 패배하자 세오아네 감독을 경질하고 2022년 10월 6일 사비 알론소를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비록 조별리그 3위로 UCL 16강 진출에는 실패하였지만, 알론소는 부임 첫 경기부터 샬케를 상대로 4:0 승리를 거두며 임팩트 있는 시작을 보여주었다. 이후 시즌 후반기를 훌륭하게 이끌어 유로파리그에서 결승전까지 진출하였으며, 세오아네 체제에서 리그 꼴찌까지도 떨어졌던 팀의 순위를 6위로 끌어올려 23-24 시즌 유로파리그 진출 또한 달성했다.

그리고 시작된 23-24 시즌, 알론소는 선수단에 자신의 전술을 완벽히 녹여내어 시즌 초반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세부전술 혹은 큰 틀에서의 전술까지도 가변적으로 구사하여 경기마다 상대를 정확하게 공략하였다. 그리하여 창단 첫 분데스리가 우승을 달성함과 동시에, 현재까지 시즌 46경기 무패행진을 이어가면서 사비 알론소의 레버쿠젠은 이번시즌 유럽축구 무대의 주인공 격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2. 훌륭한 영입, 다양성을 확보한 스쿼드

 

알론소 감독이 구사하는 다양한 전술 뒤에는 전술적으로 여러 스타일의 선수들을 수급하여 스쿼드를 구성한 롤페스 단장의 노고가 있었다.

다가오는 시즌을 구상함에 있어 핵심 선수로 낙점된 알렉스 그리말도를 5월부터 일찌감치 FA로 영입을 확정 지었으며, 이후 팀 내 에이스 입지였던 무사 디아비가 55M의 큰 이적료를 남기고 아스톤 빌라로 이적하면서 디아비의 대체를 비롯하여 여러 포지션을 보강할 수 있는 자금이 주어졌고, 롤페스는 바로 자원 물색에 나섰다.
 
그 결과 공격 옵션으로 묀헨글라트바흐의 베테랑 2선 미드필더 요나스 호프만을 10M에 영입하였으며, 생질루아스로부터 스트라이커 빅터 보니페이스를 20.5M에, 사우스햄튼으로부터 네이선 텔라를 23.3M에 차례로 영입하였다. 또한 아스날로부터 그라니트 자카를 15M에 영입하면서 3선 미드필더 옵션도 확보했다. 수비 쪽 보강으로는 바이에른 뮌헨으로부터 요시프 스타니시치를 임대 영입하여 우측 스토퍼와 윙백 옵션을 늘렸다.
 

묀헨글라트바흐로부터 영입한 요나스 호프만, 베테랑 공격수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팀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 중.



이러한 보강 끝에 스쿼드를 전술적으로 다양한 특성을 갖춘 양질의 선수들로 구성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알론소볼의 변화무쌍한 전술과 유기적인 움직임을 뒷받침하는 동력이 되었다. 이것을 단편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는 다양하게 구성되는 양쪽 스토퍼들과 3선 미드필더의 조합이다.

레버쿠젠이 점유하는 공격상황에서 주로 활용하는 1-2-3-5 대형을 형성한다고 하였을 때, 스토퍼 중 한쪽에서 전진하여 비대칭적으로 3명의 허리라인을 구성한다. 그렇기에 수적인 우위가 확보된 스토퍼가 전진한 쪽 에서 빌드업 무게중심이 형성된다. 여기서 레버쿠젠은 좌측 스토퍼 옵션으로 돌파-전진에 능한 힌카피에와 후방에서 전달하는 패스가 일품인 탑소바를 가지고 있으며, 우측 스토퍼 옵션으로도 높은 위치에서의 플레이에 능숙한 코소노우와 스타니시치, 그리고 앞서 언급한 탑소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선수들을 유연하게 조합함으로써 전개의 중심을 자유롭게 결정함과 동시에 상대를 원하는 쪽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또한 3선 미드필더 구성에 있어, 우선 핵심인 자카를 필두로 그 옆에 단단한 수비력과 수비라인 가담에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는 팔라시오스, 그리고 팔라시오스보다는 조금 더 전개에 가담하고 공격적인 재능이 있는 안드리히 중 적합한 선수를 기용하여 유연하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로테이션에서도 다양성을 확보한 스쿼드의 강력함을 엿볼 수 있다. 주전 2선 공격진인 비르츠와 호프만은 점유하는 축구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고 공간을 이끌어내는 데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다. 그러나 가끔은 속도전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속도전이 필요한 상황에서 아들리, 텔라와 같은 준족 자원들의 존재가 레버쿠젠이 무패를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이러한 공격진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보니페이스의 부상 이탈 기간 또한 잘 버텨냈다. 그리고 주전 센터백인 탑소바와 타가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에 차출되어 이탈한 상황에 스타니시치와 힌카피에가 이들을 대체해 내며 다시 한번 레버쿠젠 시스템의 우수성을 증명하였다.


이번시즌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알렉스 그리말도

 
 
이번 여름에 영입된 그리말도, 호프만, 보니페이스, 자카의 활약과 팀 내 입지 등을 생각하면 롤페스의 지원은 상당히 훌륭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말도의 경우에는 이번시즌 리그 MVP급의 활약을 펼쳤으며, 현재까지 리그에서만 9 골 13 어시스트를 기록하여 윙백 포지션을 초월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얼핏 보면 윈나우 식의 영입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레버쿠젠의 기존 스쿼드가 프림퐁, 비르츠, 힌카피에, 팔라시오스, 탑소바 등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호프만이나 자카와 같이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을 수혈하는 것은 어찌 보면 더 나은 팀이 되기 위해선 필요했던 일이고, 단순히 윈나우 차원의 영입으로 치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3. '유인', 레버쿠젠의 후방 빌드업 포인트

 
그렇다면 레버쿠젠의 전술적 면모는 어떨까? 어떠한 팀의 철학을 논할 때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단어는 '능동적 축구'이다. 능동적 축구는 공격적이고 점유 지향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것을 넘어 팀의 게임모델을 확립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경기장 안에서 하나의 팀으로서 최선의 선택지를 모색하는 태도로 범위를 확장하여 해석할 수 있는데, 레버쿠젠은 이러한 능동적 축구라는 개념의 정수를 보여준다.
 
물론 레버쿠젠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대부분의 팀들이 그러하듯, 인포제션, 즉 점유 국면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반면 많은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이언전과 같이 전력 차이와 팀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점유 지향적인 성격을 포기하며 수비 국면을 중심으로 영리하게 경기 플랜을 계획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바이언전 결과가 증명하듯 점유 국면에 대한 대비도 확실하다.
 

바이에른 뮌헨전 주요 스탯, 좌측의 레버쿠젠이 점유율에서 열세를 보이나 기회 창출에 더 능했고 역습 부문에서 뛰어났다.

 
그렇다면 레버쿠젠이 능동적으로 경기를 조립해 나가기 위해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포인트는 무엇일까? 바로 '유인' 혹은 압박의 역이용이다. 레버쿠젠은 선수들의 공간을 향한 자유로운 움직임을 통해 상당히 유동적인 포지셔닝을 구사하지만, 1.3.4.3 혹은 1.3.2.5 포메이션을 주요 틀로 삼는다. 이러한 전형을 바탕으로 레버쿠젠은 높은 라인을 유지하는 백쓰리 라인 및 2MF를 통해 상대 전방 대형의 라인 사이 공간을 공략한다.
 
아래의 시퀀스를 살펴보자. 안드리히는 자비처의 마킹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비라인으로 내려오며 백포를 형성하였고, 자비처가 이를 따라가 1선으로 올라가며 남은 MF인 엠레 잔은 중원을 지켜야 했다. 자카는 안드리히와 달리 상대 전방 라인과 미들 라인 사이에 위치해 있다. 엠레 잔이 오프더볼의 자카를 마크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라인 뒤에 포지셔닝을 취한 자카가 볼을 받을 시 엠레 잔은 볼에 대한 압박과 상대 2선 마킹이라는 양자택일에 처하게 된다.
 
레버쿠젠은 그 점을 이용하기 위해 AMF 브란트를 자카에게서 떼어내야 한다. 2MF 중 안드리히가 수비라인으로 내려왔고, 이 상황에서 자카까지 내려간다면 비효율적인 전개 상황을 보내야 하기에 CB인 탑소바가 브란트-퓔크룩 전방 대형과 자신 사이 공간에 대해 천천히 드리블을 시도하며 브란트의 압박을 유도한다. 전진 패스가 좋은 탑소바이기 때문에 그의 온더볼 상황을 방해하기 위해 브란트는 계속 공간을 내주기보단 압박이라는 선택지를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라인 사이 자카에게 볼을 배급해야 하는 상황, 자카를 마크하는 브란트를 유인하기 위해 공간에 대한 드리블을 시도하는 탑소바

 
 탑소바는 브란트가 달려오는 시점에 상대 자비처-브란트의 인터벌을 활용해 자카에게 볼을 배급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자카는 뛰어난 전진 패스 능력을 활용해 2선에 위치한 스타니시치에게 기튼스-엠레 잔의 사이 공간으로 볼을 밀어 넣어 주었다. 2WF가 측면의 너비를 확보 중이었기 때문에 2WB은 중앙으로 좁혀 들어와 2선 지역을 점유하며 엠레 잔의 수적 열세 상황을 창출했다.

볼을 받은 스타니시치는 측면 넓게 포진한 프림퐁을 활용해 측면 공격을 전개하였고, 그리말도가 빠르게 상대 수비라인 사이로 침투하면서 상대 RB인 리에르송의 시선을 끌어당겼고, 레버쿠젠은 프림퐁의 크로스 상황에서 박스 안 3v3 수적 동위를 바탕으로 측면 공간을 공략할 수 있었다.
 

자카에게 볼이 배급된 상황, 상대 라인 사이를 잘 활용하며 좋은 공격 상황을 창출했다.

 
만약 상대가 견고한 미들블록을 구축해 후방 빌드업을 풀어 나오기 어렵다면 팀 최고의 재능인 비르츠를 활용해 상황을 타개한다. 아래의 시퀀스를 보라. 라이프치히는 4-2 전방 대형을 통해 레버쿠젠의 2MF에 대한 이중 수비 구조를 취하며 볼 소유를 어렵게 했고, 자카가 원활한 볼 순환을 위해 수비라인으로 내려온 상황이다.

한편 팔라시오스는 오펜다-세슈코의 배후, 즉 라인 사이에 위치함으로써 상대에게 양자택일을 걸 준비를 했다. 이때 AMF  비르츠는 자카에게 패스 옵션을 제공하기 위해 슐라거의 블라인드 사이드를 따라 지원 움직임을 행했다. 자이발트가 상대 MF 마킹이 아닌 3선 방어에 집중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발생한 수적 우위에서 프리맨이 된 팔라시오스를 활용할 수 있었다.
 

자카가 수비라인으로 내려간 상황, 2선의 비르츠가 3선에 가담하며 슐라거에 대한 수적 우위를 형성했다.

 
비르츠를 주시하던 슐라거가 기민하게 반응했으나 개인 능력이 뛰어난 비르츠는 팔라시오스를 향해 영리하게 볼을 돌려놓으며 반대로 슐라거를 유인하는 상황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또한 슐라거의 역동작을 역이용해 그의 블라인드 사이드로 빠르게 돌아 들어가며 라이프치히의 미들라인을 돌파해 냈다.
 
비르츠는 팔라시오스와의 원투패스를 통해 올모-자이발트의 인터벌을 이용하였고, 앞선의 쉬크-호프만-프림퐁과 함께 공격 국면을 이끌어 나갈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해 점프한 슐라거의 압박을 역이용해 미들라인을 돌파해내는 비르츠

 
미들라인을 거치지 않고 수비라인에서부터 직접 2선을 향해 패스를 찔러주는 방식도 있다. CB이 지닐 수 있는 강력한 개인전술 중 하나인 '디스가이즈 패스'를 활용하는 것인데, 디스가이즈 패스란 실제 패스 타겟과 바디 포지션 및 시야로 나타나는 타겟을 다르게 하여 상대의 수비 액션에 혼선을 야기하는 패스를 의미한다.
 
아래의 상황이 그 예다. 자카에게 백패스를 받은 타가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고, 그의 시야 및 바디 포지션은 RCB을 향해있다. 라이프치히의 2CF는 타가 스타니시치에게 패스할 것을 예상하고 각각 타와 스타시치에게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타는 이를 역이용해 순간적으로 프리 상태에 놓인 비르츠를 향해 패스를 찔러주었고, 상대 MF를 최대한 끌어당긴 후 공간으로 돌아나간 자카를 활용해 경기 상황을 풀어나갈 수 있었다.
 

디스가이즈 패스에 능한 요나단 타, 자신의 바디 포지션과 시선을 통해 상대 압박을 역이용했다.

 


4. 견고한 수비블록을 무력화하는 적재적소의 포지셔닝

 
상대를 유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상대 팀이 구축한 수비블록에 균열을 야기함으로써 공간을 만들고, 해당 공간에 위치하는 프리맨을 활용해 패스를 통해 상대 라인을 돌파해 내기 위함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써 사비 알론소 감독은 수비 인원들에게 공간에 대한 드리블의 필요성을 이해시키고 경기장 안에서 행동으로 발현해 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온더볼의 선수가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과 패스 선택지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오프더볼의 선수들은 온더볼 선수에게 시선이 집중된 상대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포지셔닝을 취해야 한다. 그리말도와 비르츠가 그렇듯, 레버쿠젠의 선수들은 빈 공간, 활용해야 하는 공간으로 적절히 찾아 들어가는 유동적 포지셔닝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다.
 
 그 예시로써 아래의 시퀀스를 제시한다. 베르더 브레멘은 1.5.3.2 형태의 수비블록을 구축한 상황이다. 상대가 압박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타는 백쓰리 라인의 3v2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해당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다. 이때 LCB 탑소바는 코소우누와 달리 상대 2CF의 옆 공간에 비대칭적인 포지셔닝을 취하며 볼을 받았다.
 

후방 수적우위를 바탕으로 상대 수비블록을 파괴하고자 전진한 탑소바에게 횡패스하는 타

 
두크쉬는 탑소바가 볼을 지닌 채 직접 드리블하거나 전진패스를 시도할 것을 예상해 배후의 빈 공간을 수비하며 그를 압박했다. 안드리히는 이때 발생한 상대 2CF의 인터벌로 움직여 탑소바에게 옵션을 제공했고, 해당 포지셔닝을 통해 상대 MF와의 거리도 충분히 확보했다. 자카도 상대 MF와의 거리를 확보한 채 상대 CF의 배후에 위치하며 해당 상황을 유리하게 전개하고자 했다.
 
 
 

상대 MF와 간격을 두고 포켓을 활용하기 위해 원투패스를 전개하는 자카-안드리히

 
이러한 방식으로 자카-안드리히는 상대 미들라인을 돌파할 수 있었고, 2선에 위치를 잡은 호프만에게 볼을 전달했다. 볼의 전진 타이밍에 맞추어 RCB 코소우누가 공간을 향해 전진했기 때문에 호프만은 그를 향해 월패스를 시도할 수 있었다.
 
호프만을 거쳐 코소우누에게 전달된 볼은 탄력을 받아 RW 텔라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호프만을 거쳐 공간을 향해 전진하는 코소우누에게 월패스

 
측면으로 전달된 볼을 중심으로 레버쿠젠의 공격진은 상대 수비라인 사이에서 패스 선택지를 제공했다. 또한 전진 배치되어 MF 라인에 가세한 코소우누를 신경 쓸 수밖에 없었던 브레멘의 수비블록은 레버쿠젠의 스트롱 사이드, 즉 볼이 있는 오른쪽 측면에 과밀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양쪽 CB의 비대칭적인 위치 선정을 통해 상대의 과밀화를 유도하고, 항상 반대 전환의 선택지를 남겨 두며 상대 수비블록을 흔드는 레버쿠젠은 안드리히를 통해 반대 측면을 공략했다. 좌측 너비를 확보하던 LB 인카피에는 순간적으로 측면으로 빠져나가 상대 수비를 끌어내며 보니페이스를 향한 패스 공간을 제공했고, 이를 통해 좋은 슈팅 기회를 창출했다.
 

오른쪽 측면에 과밀화 형성, 좌측 전환해 상대 수비 사이 공간을 공략한 레버쿠젠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전후로 하여 수비블록의 견고함에 대한 고찰은 세계 여러 곳에서 이뤄져 왔고, 이러한 연구 과정은 발전하고 또 발전하여 전력 차이가 뚜렷한 두 팀의 격차를 줄이는 데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현대 축구는 비단 약팀뿐만 아니라 강팀을 상대하는 데 있어 그들의 수비 형태를 잘 파악하고 공략해야만 승리에 가까워진다.
 
이러한 흐름을 미루어 보아, 레버쿠젠의 전술적 포인트는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특정 팀만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지만, 레버쿠젠이 보여주고 있는 전술적 센세이션은 큰 틀을 놓고 보았을 때 그들이 따르는 기본 원칙이 현대 축구의 정수를 보여주는 펩 과르디올라의 맨체스터 시티와 다르지 않으며, 이는 그저 현대 축구의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일 뿐임을 뜻한다.
 
하지만 완벽한 이론이 곧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축구는 선수만으로도 최소 22명이 상호작용하는 스포츠라 변수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셀 수 없고 그 형태가 불규칙한 변수를 통제하는 것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전술도 전술이지만, 이러한 복잡한 관계성 속에서 선수들에게 자신의 철학을 이해시키고, 엄청난 중압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믿고 행동할 수 있게 한, 다시 말해 자신의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낸 사비 알론소의 지도력은 가히 칭찬받아 마땅하다.
 

분데스리그 조기 우승을 확정 지은 후 팬들과 함께 기뻐하는 레버쿠젠 선수단

5. '레버쿠젠 타임', 2023/24 시즌 레버쿠젠 기적의 순간들

 
좋은 조직력, 뛰어난 전술이 항상 승리를 가져다주진 않는다. 상대가 더 준비를 잘했다면 우리의 플랜은 힘을 발휘하기 어렵고, 득점 기회를 모두 놓친다면 승리를 따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공에는 어느 정도의 '운'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운은 당연히 노력 없이 얻어내는 일확천금 따위가 아니다. 끊임없는 시도와 시행착오의 결실로 맺어지는 기적을 뜻한다. 레버쿠젠은 대부분의 팀이 그러하듯 초중반기에 비해 중 후반기에 경기력과 결과에 부침을 겪었으며, 패배 직전의 상황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차례에 걸쳐 직면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레버쿠젠은 시즌 전체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다. 90분 추가시간에 동점, 역전골을 터트리며 패배를 막아내는 기적의 '레버쿠젠 타임'이 그 핵심이다. 이번 챕터를 통해 패배가 확실해 보였지만 극복해 낸,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써내려 간 레버쿠젠의 기적의 순간 세 가지를 뽑아보고자 한다.
 

호펜하임전 극적인 역전 상황을 만들어낸 파트릭 쉬크

 
레버쿠젠 기적의 순간, 그 첫 번째는 바로 유로파리그 16강 2차전 카라바흐와의 경기다. 레버쿠젠은 1차전 원정 경기에서도 파트릭 쉬크의 극장 동점골을 통해 패배를 면하며 한숨을 돌린 채 2차전에 돌입했다.
 
레버쿠젠은 2차전을 홈에서 치르는 만큼 로테이션에도 불구하고 전반전을 압도한 채 마무리했으나 중요한 기회를 모두 득점으로 연결 짓지 못했다.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 대가로, 레버쿠젠은 프림퐁의 헤더 경합 실패와 코바르의 아쉬운 선방으로 선제 실점을, 빠르게 밀고 들어오는 카라바흐에게 뒷공간을 허용하며 추가골을 내주며 시즌 첫 패배 및 유로파리그 탈락 위기에 놓였다.
 
2골 차로 뒤지던 레버쿠젠은 후반에만 22 슈팅을 기록하며 역전의 의지를 불태웠고, 프림퐁의 만회골을 통해 역전의 불씨를 살렸다. 그 열정에 보답하듯 90+3 분 상대 수비 사이로 쇄도한 쉬크에게 그리말도가 정확히 크로스를 내주며 한 골을, 경기 종료 직전에 팔라시오스의 크로스를 쉬크가 정확히 돌려놓으며 역전골까지 기록했다. 쉬크는 16강 기적의 주인공으로 등극했으며, 패배 위기를 직감하고 팔라시오스-쉬크-그리말도를 투입한 알론소 감독의 용병술은 대성공이었다.
 

팔라시오스의 크로스를 정확히 밀어 넣으며 경기 종료 직전 역전골을 넣은 시크

 
레버쿠젠의 두 번째 기적의 순간은 분데스리가 30R 도르트문트 원정 경기이다. 레버쿠젠은 분데스리가 우승을 확정 지은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위닝 멘탈리티를 유지하며 원정에서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도르트문트의 점유 국면을 적절히 방어해 냈고, 공격진에 로테이션을 돌렸음에도 몇 차례 위협적인 장면을 창출해 냈다.
 
그렇게 경기를 주도하던 레버쿠젠은 박스 안으로 쇄도한 자비처를 놓쳤고, 자비처의 크로스를 받은 퓔크룩의 한 방에 당하며 패배의 위기에 봉착했다. 실점 이후 주도권을 완전히 내주었으며 경기 막판 상대 선수와 갈등을 빚으며 어수선환 분위기를 환기하지 못했다.
 
잔여 일정 가장 강력한 상대 중 하나인 도르트문트를 막아내지 못하며 레버쿠젠의 무패 행진이 종료되는 듯했으나, 경기 종료 직전 코너킥 상황에서 스타니시치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다. 레버쿠젠의 공세에도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던 코벨은 이전 90분의 분투가 무색하게 승리를 앞두고 무너져 버렸으며, 레버쿠젠의 무패 기록은 한 경기 더 연장되었다.
 

'로언 히어로' 스타니시치의 극장 동점골

 
해당 챕터에서 소개할 마지막 기적의 순간은 31R 슈투트가르트전이다. 30R 도르트문트전과 버금가는 강자와의 대결로, 레버쿠젠의 무패행진이 깨질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경기로 거론되었다. 레버쿠젠은 전반전에만 2개의 결정적 기회를 창출하며 소문을 잠재우는 듯했으나, 위 경기들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며 다시 위기는 시작되었다.
 
기류가 달라진 후반전, 레벨링은 뒷공간 침투에 이어 슈투트가르트의 경기 첫 유효슈팅을 만들었고, 세컨드볼이 퓌리히에게 연결되며 레버쿠젠은 또다시 끌려가는 입장에 처했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돈하지 못한 레버쿠젠은 얼마 있지 않아 흐라데키의 킥을 인터셉트 후 빠르게 밀고 들어오는 슈투트가르트에게 추가골을 허용했고, 이번에야말로 무패행진이 종료되는 듯했다.
 
하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레버쿠젠의 절박함은 더욱 빛이 났다. 인카피에의 끈질긴 측면 돌파가 박스 부근에 자리 잡은 아들리에게 연결되며 만회골이 터졌다. 하지만 이후 번번이 득점에 실패하다 경기 종료 직전 프리킥을 얻어내며 마지막 찬스를 획득했다. 비르츠가 올려준 볼을 인카피에가 잘 지켜냈고, 그 세컨드볼을 안드리히가 밀어 넣으며 레버쿠젠은 또다시 기적을 써 내렸다. 
 

슈투트가르트전 동점골의 주인공, 안드리히

6. 다음시즌 전망 - 이제는 더 큰 무대로 

 

알론소를 향한 숱한 빅클럽들의 러브 콜에도 불구하고, 잔류를 공식화하며 우려하던 알론소의 이탈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알론소가 남는다면 선수단 또한 잔류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확률이 높아졌다. 알론소의 잔류 만으로 레버쿠젠의 전망이 꽤나 긍정적이라고 이야기하더라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알론소의 잔류로 한시름 놓은 상황에서, 다음시즌에 레버쿠젠이 마주할 변수들은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로는 UCL이다.
 
그동안에도 돌풍을 일으키며 UCL에 진출했던 팀들이 경험적으로 부족한 UCL 무대에서 실망적인 모습을 비추는 경우는 자주 볼 수 있었다. 아스날 또한 리그에선 이미 당연하게 우승을 경쟁하는 강호로 자리 잡았지만, UCL 경험 부족으로 인해 체급 차이가 꽤 나는 FC포르투를 상대로도 졸전을 펼치며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UCL 본선 무대 경험이 없는 알론소 감독과 재구성된 선수단이 과연 리그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UCL무대에서도 그대로 보여주어 대회의 새로운 강호로 등극하고 세간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또한 UCL에서는 리그 일정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은 강팀들과의 대결이 예정되어 있다. 일정상으로 유로파리그에 출전한 이번시즌보다 더욱 선발 자원들의 체력적인 여유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칫 UCL 경기에서의 실망적인 결과가 선수단의 사기에 영향을 주어 시즌 전체에 독이 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23-24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포르투에게 패배한 아스날



두 번째로는 선수단 보강이다.
 
창단 첫 분데스리가 우승과 다음시즌 UCL 진출을 확정 지었으며 무패우승과 유로파리그 우승에도 근접한 상황이기에, 대회상금을 비롯한 이번시즌의 높은 수익성 그리고 다음시즌의 예정 수입 증가 등의 방면에서 다가오는 시즌을 대비하는 예산이 대폭 증가할 가능성이 높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알론소가 잔류함에 따라, 알론소가 지도하는 레버쿠젠으로의 이적에 호의적인 선수들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훌륭한 스쿼드 조화를 깨는 무리한 영입은 경계해야 한다. 2010년대 중후반 FC 바르셀로나가 잘못된 영입을 남발하여 서서히 암흑기로 향하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말 필요한 영입만 진행하고, 기존 선수단에 이번시즌의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로 인센티브를 주거나 급여를 올린 재계약을 추진하여 붙잡는 데 예산을 지출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물론 지난여름 훌륭한 영입으로 알론소볼을 든든하게 보좌한 롤페스 단장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기에 현명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전망한다.

그렇다면 어떤 영입이 꼭 필요한 영입일까?

일단 그리말도의 백업 자원 영입이 필요하다. 이번시즌은 다행히 그리말도가 큰 부상 없이 시즌을 보냈지만, 다음시즌에도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다음시즌에는 UCL에 진출하면서 중요도 높은 경기가 많아 짐에 따라 팀의 핵심 중에 핵심인 그리말도의 체력적 여유는 더욱 없어질 것이다.
 
힌카피에를 그리말도 자리에 기용하는 식으로 가끔씩 대체할 수 있었지만, 힌카피에가 그리말도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그리고 결국은 그리 여유 있지 않은 좌측 스토퍼의 옵션을 소모해서 대체한 것이기에, 체력이나 부상 문제가 좌측 스토퍼 포지션까지 전이되는 문제도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리말도와 스타일을 공유하는 백업 자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시즌이 끝나면 뮌헨으로 임대 복귀하는 스타니시치



또한 이번시즌 우측에서 쏠쏠한 활약과 함께 많은 역할을 겸해주던 스타니시치가 뮌헨으로 복귀한다. 이제 대권 도전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팀인 레버쿠젠에 뮌헨이 다시 한번 스타니시치를 임대 보내줄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한다. 반드시 스타니시치를 대체할 만한 프로필을 가진 우측 윙백을 데려와야 할 것이다.
 
중원에도 보강이 필요하다. 자카, 팔라시오스, 안드리히를 제외하면 중원 옵션의 무게감이 떨어지고, 가장 핵심인 자카는 이제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한다. UCL 일정까지 소화해야 하는 다음시즌을 대비하여 중원 옵션에 무게감을 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원에 예산을 투자하는 것이 큰 틀에서 기존 선수단의 조화를 깨지 않으면서도, 변주를 주기에 가장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챔피언스리그를 향해 출사표를 던지는 사비 알론소, 유럽을 레버쿠젠 돌풍으로 집어삼킬 수 있을까?

 
 
굳이 레버쿠젠의 팬이 아니더라도, 축구팬이라면 사비 알론소가 이끄는 레버쿠젠이 UCL에서 보여줄 모습을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절한 보강과 철저한 준비로 알론소볼이 다음시즌 UCL에서도 돌풍을 일으키며 한 시대를 풍미하는 팀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